<p></p><br /><br />북한 소식이 매번 무겁게 다가오실 분들, 북한 땅에 가족을 남겨둔 이산가족 분들이시죠. <br> <br>명절이면 그리운 마음은 더 커져서 고향생각, 가족생각 때문에 가시는 곳들이 있습니다. <br> <br>김진이 간다 김진 기자가 함께 했습니다.<br><br>[리포트]<br>[김진] <br>설 연휴 마지막 날입니다. 고향을 코앞에 두고도 오랜 세월 가보지 못하는 분들이 있는데요. 바로 실향민들입니다. 이제 이분들도 무척 연세가 드셔서 작년 한 해에만 이산가족상봉 신청자 3,000명가량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. 고향을 코앞에 두고도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분들. 과연 이번 설, 어떤 명절을 보내셨을까요? <br><br>실향민 1세대인 윤일영 할아버지. <br> <br>파주 임진각 너머 지금은 북한 땅인 경기도 장단이 고향인데요, 6.25 때 가족들과 함께 고향을 떠났습니다. <br> <br>[윤일영(84) / 실향민] <br>대내면, 강상면, 대강면, 우리 고향이 오음리인데, 장단군 장도면 오음리. 여기가 우리 집안이야 윤일영. <br> <br>고향 생각이 날 때마다 직접 지도를 그려나갔습니다. <br> <br>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윤일영 할아버지. <br> <br>온가족이 내려왔지만 잠시 고향에 돌아갔던 넷째 형만은 다시 만날 수 없었습니다. <br> <br>[윤일영(84) / 실향민] <br>우리 큰 형님, 둘째 형님 그리고 셋째 형님 이거 본인 나. 만약에 넷째 형님이 살아계셨다면 여기에 서 계셨겠네요. 넷째 형님이 625 났을 때 고향에 다녀온다고 어머니한테 얘기했다는데 <br> <br>헤어져 보낸 세월이 어느덧 70년. 끝내 보지 못한 형님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. <br> <br>[윤일영(84) / 실향민] <br>만일에 살아서 만난다면 ‘아니 형님 그 얼마나 고생을 하셨느냐?’ (묻고 싶어요) <br> <br>고향이 그리울 때면 파주 감악산을 찾아갑니다. <br> <br>어린 시절, 고향 집 툇마루에서 남쪽에 있는 감악산을 바라본 기억 때문입니다. <br> <br>[윤일영(84) / 실향민] <br>저기 멀리 희미하게 산 보이는 게 우리 고향에 비치산이라고 하는 산인 것 같아. 여기서 거리로 보면 약 4km 내지 5km 되거든. 그러니 지척이지 뭐 지척 <br> <br>고향 비치산을 바라볼 때마다 고향에 홀로 남은 넷째 형님 얼굴을 그려봅니다. <br> <br>분단의 아픔을 담고 있는 파주 임진각. <br> <br>정성춘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벌써 50년 가까이 실향민들의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. <br> <br>[정성춘(75) / 실향민] <br>실향의 아픔 그 사연이라든가 부모, 형제 그리워하는 그 모습, 그런 장면 있으면 찍고 그러려고 <br> <br>임진각 한 켠에는 그가 찍은 실향민들의 모습이 전시되어 있습니다. <br> <br>[정성춘(75) / 실향민] <br>이 분이 북한 고향에 어머니가 계신데요. 그러니까 여기 와서 보고 싶어서 이렇게 우는 사연이야. 이거는 부모 형제 가족이 빨리 오기를. <br> <br>정성춘 할아버지 역시 실향민입니다. <br> <br>[피디] <br>어디 가시는 거예요? <br> <br>[정성춘(75) / 실향민] <br>내가 살던 내 고향, 고향 하늘 보러. <br> <br>한평생을 임진각에서 보낸 할아버지. 고향 땅을 밟을 날만을 기다립니다. <br> <br>[정성춘(75) / 실향민] <br>지금 생각하면 한 번 내가 나이 더 먹기 전에 살아있는 동안에 한 번 가봤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요. <br>어떻게 변했는지 카메라로 남기고 싶어요. <br> <br>매년 설에는 실향민들이 임진각에 모입니다. <br> <br>함께 모여 차례를 지내며 고향에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봅니다. <br> <br>명절 때면 더더욱 생각나는 가족들. <br> <br>정성춘 할아버지는 설날에도 변함없이 임진각을 지키고 있습니다. <br> <br>[정성춘 (75) / 실향민] <br>오늘 설날이야. 그러니까 이거 하나씩 들고 가요. <br> <br>[실향민 A씨] <br>이게 뭐예요? <br> <br>[정성춘(75) / 실향민] <br>설날이라서 싸 온 거예요. <br> <br>고향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며 아픔을 나눕니다. <br> <br>[정성춘(75) / 실향민] <br>고향 어디야? <br> <br>[실향민 A씨] <br>황해도. <br> <br>[정성춘(75) / 실향민] <br>황해도. 나는 저기 장단이야. 손에 잡힐 듯해도 못 가는 거 아니야. <br> <br>곧 돌아갈 수 있으리란 생각으로 전쟁을 피해 떠나온 고향. <br> <br>하지만, 어느덧 분단 70년. 실향의 아픔은 대를 이어 계속 됩니다. <br> <br>[실향민 B씨] <br>어머니는 돌아가신 걸 아직 확인 못 했어. <br> <br>[피디] <br>고향 생각 많이 나시겠네요? <br> <br>[김원육 / 실향민] <br>나면 뭘 해. 가질 못 하는데 착잡하지. <br> <br>분단 이후 강산이 7번 변했지만 눈앞의 고향을 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은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. <br><br> 올해는 부디 이분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길 바랍니다. 김진이 간다의 김진입니다.